2025년 7월 4일 금요일

스테이블코인의 진실: 1달러 약속 뒤에 숨겨진 글로벌 금융 전쟁

테더의 등장과 불편한 진실

2014년, 암호화폐 시장에 혁신적인 개념이 등장했다. 바로 테더(USDT)다. "1달러를 맡기면 1테더를 주겠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약속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달러처럼 안정적이면서도 암호화폐처럼 빠른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화폐를 표방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디지털 달러'라는 매력적인 개념에 거대한 유동성이 몰려들었고,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탄생했다. 하지만 달콤한 약속 뒤에는 불편한 의문이 따라왔다. 정말 테더 안에 1달러가 온전히 보관되어 있을까? 불투명한 회계 처리와 감사 부족으로 인해 진실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중국 자본과 테더의 성장

테더가 시장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2017년 중국이 비트코인 거래소를 폐쇄했을 때, 중국인들은 비트코인을 구매할 방법이 필요했다. 이때 테더가 해결책이 되었다. 위챗페이 같은 디지털 결제 시스템에 익숙한 중국인들은 테더를 통해 우회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중국은 본토에서는 암호화폐를 금지하면서도 홍콩에서는 미국과 거의 동시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이는 금융 허브로서의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전략

트럼프 행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차세대 달러 무기'로 키우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프라이버시 문제로 정치적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민간이 발행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스테이블코인은 본질적으로 '국경 없는 양도성 예금증서'다. 터키나 아프리카 같은 인플레이션이 심한 국가의 시민들이 자국 통화 대신 달러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인 것이다. 이는 달러 수요를 늘리고, 궁극적으로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로 이어진다.

테더 vs USDC: 패권 경쟁

현재 시장에서는 테더(USDT)와 USD코인(USDC)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테더는 중국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최근 트럼프 정부의 '애국주의' 기조 하에서 골드만삭스가 지원하는 USDC가 추격하고 있다.

테더의 문제는 미국 국채만이 아닌 다양한 자산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심지어 기업 주식까지 포함된 포트폴리오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환전을 요구할 때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에게 미국 국채만 보유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충돌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혁신적인 측면은 기존 금융망을 완전히 우회한다는 점이다. 신용카드나 은행 송금이 여러 금융기관을 거쳐야 하는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직접 전송된다. 이는 'Phone to Phone' 거래로, 몇 초 만에 전 세계 어디든 송금이 가능하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은행과 신용카드 회사들에게는 위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이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한 금융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시티뱅크 같은 금융 거대 기업들이 규제 환경만 명확해지면 즉시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진입할 예정이다.

새로운 금융 엔진의 탄생

스테이블코인과 암호화폐의 결합은 완전히 새로운 금융 엔진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을 담보로 맡기고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대출받아 유통시키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이는 기존의 국채를 담보로 한 레포 거래와 유사하지만, 훨씬 더 유연하고 접근성이 높다.

중국의 대응과 지정학적 함의

중국이 최근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고 있는 것은 스테이블코인과도 연관이 있다. 중국은 미국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자국의 금융 자율성을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중국인들은 여전히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에 접근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의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 침공 시 보유한 미국 국채를 모두 매도할 경우 미국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충분히 크다면 이러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의 선택과 기회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한국 국민들이 원화와 달러 스테이블코인 중 선택하라면 상당수가 달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기회도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리터러시를 보유한 국민들과 삼성 같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를 통해 새로운 디지털 금융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삼성의 잠재력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다. 만약 삼성이 단순한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주체가 된다면 어떨까? 삼성이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자가 될 수도 있고, 이는 삼성을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올려놓을 것이다.

삼성 갤럭시폰을 사용하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사용자들의 자금으로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회사가 된다면, 미국도 삼성에 대한 정책 결정 시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통화 주권의 위기와 새로운 질서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각국의 통화 정책과 환율 정책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 국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쉽게 자국 통화를 달러로 바꿀 수 있다면,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효과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국민들이 달러로 피하면서 약세를 더욱 강화하고,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다시 원화로 돌아오면서 강세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이는 중앙은행의 환율 안정화 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달러라이제이션의 가속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을 크게 촉진한다. 은행 계좌 없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달러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한 국가의 국민들은 자국 통화 대신 달러를 선택하게 된다. 이는 미국에게는 달러 패권 강화의 기회이지만, 다른 국가들에게는 통화 주권의 위기를 의미한다.

리플과 기업형 블록체인의 부상

트럼프 정부의 친암호화폐 정책 하에서 리플(XRP)도 주목받고 있다. 리플은 완전한 탈중앙화보다는 기업이 주도하는 블록체인 모델을 추구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더 효율적이고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리플 회사는 트럼프 선거 캠페인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고, 이제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승인받았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애국주의에 기반해 리플을 적극 지원한다면, 리플 투자자들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결론: 새로운 금융 질서의 시작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글로벌 금융 질서를 재편하는 전략적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1달러의 달콤한 약속 뒤에는 미국의 달러 패권 강화 전략과 중국의 대응, 그리고 각국의 통화 주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숨어있다.

우리는 지금 중앙은행도 정부도 아닌 민간이 만든 디지털 달러를 사용하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고, 각국은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다. 높은 IT 리터러시와 글로벌 기업들을 활용해 새로운 디지털 금융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면, 싱가포르나 스위스가 기존 금융 질서에서 차지했던 지위를 디지털 시대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과연 인류의 진보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통제와 의존의 시작일까? 그 답은 우리가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분명한 것은 이미 시작된 이 변화의 물결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금융사의 새로운 장을 목격하고 있으며, 그 주인공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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