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클(Circle) IPO 상장, 스테이블코인 시대의 신호탄
2025년 하반기, 세계 경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로는 최초로 IPO 상장을 한 서클(Circle)의 등장은 이 시장의 폭발적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서클이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1,167%나 급등했고, 다음 날에도 200% 이상 상승하며 이틀 동안 총 400% 이상의 주가 상승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열풍을 넘어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시장의 기대와 관심이 얼마나 집중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다.
과거에는 코인을 거래하는 거래소들이 상장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 코인을 발행하는 발행업체가 상장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산업이 이제 실험적 단계를 벗어나 본격적인 금융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 금융권의 대응: 미국 4대 은행의 연합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통 금융권의 움직임이다. JPMorgan, Bank of America, Citi, Wells Fargo 등 미국의 대표적인 4대 은행들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나섰다. 이들은 공동 지분으로 하나의 기관을 설립하고, 그 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서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그동안 비은행권에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들이 확산되면서, 이용자들이 은행을 거치지 않고 직접 코인으로 거래하는 패턴이 늘어났다. 이는 전통적인 은행의 존재 가치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했고, 결국 은행들도 '우리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서 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단순히 수익 실현만이 목적이 아니라, 금융 시장에서 전통적인 은행이 사라지게 만드는 모델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법제화의 의미: 스테이블코인이 턱시도를 입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과 함께 등장한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바로 법제화다. 과거에는 법적 시스템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주저했다.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이루어지면서 전통적인 민간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신세계 그룹이나 롯데 그룹 같은 기업들이 이미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는데, 이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하면 엄청난 효용을 기대할 수 있다.
진이얼액트(GENIEAL Act)라고 불리는 법안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 1대1 준비금 의무화: 발행된 스테이블코인만큼 실제 달러를 보유해야 함
- 정기적 감사 의무: 발행기업은 자산을 정기적으로 감사받아야 함
- 규제 기관 승인: 연방 혹은 주 단위 금융기관의 허가 필요
- 빅테크 견제: 애플,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금지
- AML/KYC 준수: 기존 금융권의 자금세탁 방지, 신원인증 의무 적용
이런 법제화는 마치 스테이블코인이 '턱시도를 입은' 것과 같다. 과거의 부족하고 불안정한 모습에서 벗어나 정장을 차려입고 당당하게 금융 시장에 나선 것이다.
시장 현황: 테더와 서클의 양강 구도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테더(USDT)가 62%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서클의 USDC가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테더는 상장을 하지 않았는데 서클은 상장을 했다는 것이다.
서클이 상장을 선택한 이유는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법제화 이전에도 충분히 투자자금을 모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상장 후 주가 급등은 이런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미국 국채 매입처로서의 기능: 숨겨진 진짜 목적
스테이블코인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는 1달러를 받고 1코인을 제공한다. 그런데 받은 현금을 그대로 보관할 수는 없다. 대신 미국 단기 국채를 매입하게 되어 있다.
단기 국채는 현금화가 쉬우면서도 3-4%의 수익률을 제공한다. 즉,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는 받은 현금만큼 국채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결과적으로 미국 국채 매입처로서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이런 분석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단기 국채 보유량에서 스테이블코인은 1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4년 한 해 동안 미국 국채를 매입한 규모로는 JPMorgan, 중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니라 미국 국채 시장의 중요한 매입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테이블코인의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진짜 의도: 재정적자 해결책
그렇다면 왜 트럼프 행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걸까? 그 배경에는 미국의 심각한 재정적자 문제가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특히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순이자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부채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데다가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이자 부담이 가중된 결과다.
현재 미국의 이자지출액은 국방비 지출보다도 많고, 메디케어에 해당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만약 금리가 더 올라간다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30년물 국채 금리는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이나 감세정책 등으로 인해 국채 발행량은 늘어날 것 같은데,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달러지수는 하락하는데 국채 금리는 올라가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국채 금리와 달러가치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지금은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미국 국채에 대한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 안정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줄 매입처가 생기고, 이를 통해 국채 금리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트럼프가 그토록 원하는 금리 안정화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위험성: 디지털 뱅크런의 가능성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에도 위험성은 존재한다. 가장 큰 위험은 '디지털 뱅크런'이다.
과거 금 보관증서가 화폐 역할을 했던 시절, 세공업자들이 실제 보유한 금보다 더 많은 보관증서를 발행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어떤 요인으로 인해 국채시장이 불안해지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들이 일제히 달러로 환전을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가 보유한 자산의 상당 부분이 미국 단기 국채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채시장이 불안하면 국채 가격이 떨어진다. 만약 이 시점에 대량의 환전 요구가 들어오면, 발행업체는 미실현 손실이 있는 국채를 헐값에 매각해서라도 달러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발행업체를 파산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통적인 뱅크런과 달리 디지털 뱅크런은 전자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은행 지점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앱에서 클릭 몇 번으로 환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소문이 나면 순식간에 대규모 환전 요구가 몰릴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금융위기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제적 맥락: 중국과의 기축통화 경쟁
스테이블코인 전쟁을 이해하려면 국제적 맥락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중심으로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확산시키며 국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 기반의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전 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달러의 국제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 초당적으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전략적 고려가 깔려 있다. 단순히 국내 금융 시장의 혁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결론: 변화의 물결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 필요
스테이블코인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2025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이 변화는 우리의 일상과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분명 많은 장점을 가져다준다. 결제의 편의성, 금융 포용성 확대, 국경을 넘나드는 송금의 효율성 등이 그것이다. 또한 미국 입장에서는 재정적자 문제 해결과 달러 패권 유지라는 전략적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위험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뱅크런의 가능성,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 증가, 규제의 공백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져다줄 혜택을 최대화하면서도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법제화 과정에서 적절한 규제 체계를 구축하고, 발행업체들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며, 위기 상황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소비자 보호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
스테이블코인 전쟁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서 글로벌 금융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금융 환경이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