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6일 수요일

한국 원전 산업의 부상과 투자 전망: AI 시대가 가져온 새로운 기회

최근 원전 관련 주식들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 두산에너빌리티가 200% 이상 상승하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현상 뒤에는 단순한 투기적 움직임이 아닌, 전 세계적인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와 한국 원전 기술의 경쟁력이 자리하고 있다.

원전 부활의 배경: AI가 바꾼 에너지 판도

전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기조가 강했던 많은 국가들이 이제 '친원전'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AI의 등장이다.

AI와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력을 소비한다. 기존의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이런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AI 기업들은 안정적이고 깨끗한 전력원을 필요로 하는데, 원전이 바로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실제로 아마존, 구글, 오픈AI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의 SMR(소형모듈원자로) 개발업체들과 직접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전력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서, 미래 에너지 생태계에서 원전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국 원전의 경쟁력: 가격이 답이다

한국은 원전 분야에서 미국이나 프랑스 대비 후발주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를 시작으로, 2025년 체코 원전까지 연이어 수출에 성공하고 있다. 이런 성과의 핵심은 바로 '가격 경쟁력'이다.

원전을 도입하려는 국가들의 가장 큰 목적은 전력을 싸게 공급받는 것이다. 한국의 원전 건설 비용은 러시아를 제외하면 주요국 중 가장 저렴하다. 한국이 시공한 UAE 바라카 원전이나 국내 신고리, 신월성 원전의 건설 단가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보글 원전이나 프랑스 EDF의 플라망빌 원전 대비 현저히 낮다.

이런 가격 경쟁력은 단순히 인건비가 저렴해서가 아니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하면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효율적인 공급망을 구축했다. 이는 쉽게 따라할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경쟁 우위다.

원전 밸류체인 분석: 누가 언제 수혜를 받을까

원전 건설은 약 12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다. 각 단계별로 참여하는 기업들과 매출 인식 시점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설계 단계 (초기 2-4년): 한전기술이 전체 원전 설계를 담당한다. UAE 바라카 원전 사례를 보면, 사업 초기에 매출이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주기기 제조 (초기-중기): 두산에너빌리티가 원자로, 증기발생기 등 핵심 장비를 공급한다. 전체 사업비의 약 20%를 차지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시공 단계 (중기 5-8년):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등이 참여하며, 전체 사업비의 35% 정도를 가져간다. 바라카 원전에서는 약 7.5조원 규모였다.

운영 및 정비 (후기-지속): 한전KPS가 원전 가동 후 지속적인 정비를 담당한다.

현재 체코 원전 사업이 본격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설계를 담당하는 한전기술과 주기기를 제조하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상대적으로 빠른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SMR: 원전의 미래인가, 과대포장인가

SMR(소형모듈원자로)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기존 대형 원전이 1000MW 이상의 출력을 내는 반면, SMR은 300MW 이하의 소형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듈화'다. 주요 부품들이 일체화된 모듈 형태로 공장에서 생산되어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건설 기간을 10년에서 3-4년으로 단축할 수 있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개발 단계다. 미국 뉴스케일파워만이 규제기관 승인을 받았을 뿐, 나머지 80여 개 기술은 모두 개발 중이다.

한국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미국 SMR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어놓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 X-에너지 등에 주기기를 공급하기로 했고, 삼성물산은 루마니아 SMR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장 개화는 2030년경으로 예상된다.

투자 관점에서 본 원전 섹터

원전 섹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주 경쟁력'이다. 원전은 수주 산업이기 때문에 어느 시장에서 얼마나 수주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한국 기업들은 크게 두 가지 루트로 수주에 참여할 수 있다. 첫째는 '팀코리아' 모델이다. 한국전력공사나 한수원이 주계약자가 되어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한전기술(설계), 두산에너빌리티(주기기), 현대건설·삼성물산(시공), 한전KPS(운영지원) 등이 참여하는 구조다.

둘째는 '민간협력' 모델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수주하면 현대건설이 시공 파트너로 참여하는 식이다. 작년 말 웨스팅하우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불가리아 원전의 경우, 현대건설이 시공의 100%를 담당할 수 있어 상당한 수혜가 예상된다.

리스크 요인들

물론 리스크도 있다. 가장 큰 변수는 '국민 인식'이다. 원전 정책은 정치적 결정이 많기 때문에, 원전 사고나 여론 악화가 발생하면 투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 세계 원전 프로젝트가 급감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한 현재 원전주들의 주가 상승폭이 상당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시가총액이 6-7조원 수준까지 올라와 있어, 추가 상승 여력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실제 수주 성과와 실적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책 변화의 영향

국내 정책 환경도 중요한 변수다.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두산에너빌리티, 한전기술 등의 매출이 크게 감소했고, 시가총액도 저조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친원전 정책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 건설이 포함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국내 원전 건설 재개는 단순히 전력 수급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지속적인 프로젝트 물량이 확보되면 원전 관련 인력과 기술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고, 이는 해외 수출 경쟁력으로도 이어진다.

미래 전망과 투자 전략

10-20년 후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원자력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AI, 모빌리티, 그린에너지 등 글로벌 메가트렌드가 지속되는 한,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원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원전이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투자 관점에서는 수주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에 주목해야 한다. 팀코리아 밸류체인에 속한 기업들과 웨스팅하우스 등 글로벌 업체와 협력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 유력하다. 다만 현재 주가에 상당한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어, 실제 수주 성과와 실적 개선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원전 산업은 단순한 테마주가 아닌 구조적 성장 동력을 가진 섹터로 평가된다. AI 시대의 전력 수요 급증, 탄소중립 정책, 한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중장기 성장 가시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정책 변화나 안전성 이슈 등의 리스크 요인들을 충분히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원전 섹터는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성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로, 장기 투자 관점에서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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