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하반기, 세계 금융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은 알아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소해한다. 하지만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다가오는 금융 혁명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화폐의 역사 - 금 보관증서에서 디지털 화폐까지
스테이블코인을 이해하려면 먼저 화폐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과거 인류는 금을 주고받으며 거래했다. 하지만 금을 직접 들고 다니기엔 무겁고 불편했다. 그래서 금세공업자들이 금을 보관해주고 대신 '금 보관증서(Gold Smith Note)'를 발급해줬다.
이 금 보관증서가 바로 화폐의 시초다. 사람들은 실제 금 대신 이 증서를 가지고 거래하기 시작했고, 금세공업자는 자연스럽게 은행의 역할을 하게 됐다. 지금도 영국 파운드화를 보면 "Bank of England promises to pay the bearer on demand"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이는 금 보관증서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다.
중요한 건 통화 자체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도 달러, 지금도 달러, 미래에도 달러다. 바뀌는 건 그 통화를 지급하고 결제하는 수단, 즉 화폐의 형태다.
디지털 자산의 등장 - 가상자산과 디지털 화폐의 구분
17세기 금 보관증서가 현재의 화폐를 만들었다면, 2020년대에는 디지털 자산이 새로운 화폐 혁명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은 화폐로서의 기능이 제한적이다. 발행 주체가 불분명하고(탈중앙화), 관리 감독이 어려우며, 무엇보다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다. 하루에도 몇 퍼센트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자산을 화폐로 쓰기엔 불안하다.
그래서 등장한 게 바로 디지털 화폐다. 크게 두 종류가 있다:
1.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 발행 주체: 중앙은행 (한국은행, 중국 인민은행, 미국 연준 등)
- 특징: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관리
2. 스테이블코인
- 발행 주체: 민간기업 (테더, 서클 등)
- 특징: 특정 통화(주로 달러)와 1:1로 연동되어 안정적
CBDC vs 스테이블코인 - 발행 주체만 다를 뿐
중국의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 인민은행이 CBDC를 발행하면, 시중은행들이 그만큼의 현금을 인민은행에 맡기고 DCEP을 받는다. 그리고 이를 개인과 기업에게 공급한다. 중국 공무원들은 실제로 월급의 일부를 DCEP으로 받아서 지하철 요금 결제, 쇼핑 등에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부터 한국은행이 CBDC 개발에 착수했고, 2025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프로젝트 한강'이라는 실증 테스트를 진행한다. 이 테스트에서는 실제로 711 편의점에서 CBDC로 결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은행 앱에서 현금을 CBDC로 전환하고, QR코드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 수익 창출 구조
스테이블코인의 진짜 특징은 발행업체의 수익 구조에 있다. 테더나 서클 같은 발행업체는 1달러를 받고 1코인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받은 현금을 그대로 보관만 하지 않는다.
핵심은 이렇다:받은 현금의 일정 비중을 국채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국채 금리가 4%라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는 4%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코인 구매자가 많아질수록, 즉 더 많은 현금이 모일수록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까? 가장 극단적인 예로 삼성그룹을 생각해보자. 삼성전자 미국 법인과 삼성전기 한국 공장 간의 무역 거래를 할 때, 기존 은행망을 통하면 여러 기관을 거쳐야 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수료도 많이 든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송금이 가능하고 수수료도 거의 없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계열사 간 거래, 글로벌 직원 급여 지급 등에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폭발적 확산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이미 2020년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경제 전망서에서도 "각국의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가 발행되기 시작하고 테더 등과 같은 민간기업 중심의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통화로 등장할 미래가 멀지 않다"고 전망했었다.
실제로 현재 테더의 시가총액은 1,529억 달러에 달한다. 발행업체들도 테더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늘어나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실생활에서의 활용이다. 리더페이(Ledger Pay) 같은 스타트업은 비트코인이나 테더를 충전해서 카드 결제로 이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미국 비자카드와 제휴해서 158개국, 1억 3천만 개 이상의 가맹점에서 사용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타벅스, 코인노래방, 택시, 심지어 ATM에서 현금 인출까지 가능하다. 이용자와 이용처가 계속 늘어나면서 스테이블코인이 실질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법제화 - 게임 체인저가 될 변수
스테이블코인 확산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바로 법제화다. 지금까지는 관련 법적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비즈니스가 이뤄졌다. 언제 불법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적극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뛰어들겠는가?
하지만 안정적인 법제도가 만들어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놀이터가 없다가 놀이터가 생기는 것과 같다. 많은 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라이브니스 액트(Liveness Act)'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제화는 단순히 규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투명한 게임 룰을 제시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가 얼마나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공개할 의무,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2025년, 스테이블코인 전쟁의 서막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서 금융 패권 경쟁의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 하고, 중국은 이를 빼앗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과 CBDC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국제 무역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으면, 환율이 국제 무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도 이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어떤 통화를 기준으로 대외 거래를 지속할지, 우리만의 디지털 화폐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한 중장기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2025년 하반기 이후의 세계는 지금과 상당히 다른 모습일 것이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