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비트코인처럼 하루에 30%씩 요동치는 일반 코인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실제 화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스테이블(Stable)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달러나 금 같은 실제 자산에 연동되는 암호화폐다. 예를 들어 1코인이 1달러와 같은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달러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이 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한계
우리나라는 금융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송금이나 결제에 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해외 송금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복잡함과 비효율성을 경험했을 것이다.
실제로 홍콩의 골드만삭스에서 세미나 강연료를 받을 때 겪었던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송금을 했는데 돈이 오지 않았고, 확인해보니 계좌번호가 틀렸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런 오류가 발생했다는 알림조차 없었다. 양쪽에서 각각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름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다. 만약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해외 송금을 하려고 하면, 국제 SWIFT망에서 "혹시 북한으로 가는 자금 아니야?"라며 일단 거래를 차단해버린다. 김여정, 심지어 김정은과 비슷한 이름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경제제재를 받을 때도 SWIFT망에서 퇴출당하면서 국제 거래가 불가능해졌다. 이런 중앙화된 시스템의 한계를 디지털화된 블록체인 시스템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가치 제안이다.
디지털 세계의 기축통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거래 때문이다. 암호화폐 생태계에 한번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굳이 현실 세계로 나오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은밀하고 싶은 사람들, 자산이 드러나기 싫은 사람들이 그렇다.
예를 들어 A코인을 비트코인으로 바꾸고 싶을 때, 기존에는 현실 세계로 나와서 환전하고 다시 비트코인을 사야 했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 안에서 안정적인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면, 굳이 현실 세계로 나올 필요가 없다.
후진국에서의 실용성
스테이블코인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곳은 의외로 선진국이 아니다. 터키나 아르헨티나 같이 자국 통화가 불안정한 나라에서 GDP 대비 스테이블코인 사용량이 30-40배나 높다.
이런 나라의 국민들은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 그래서 자국 통화 대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자산을 보호하려고 한다. 은행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테이블코인은 정말 안정적일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스테이블코인이 정말 안정적이냐"는 것이다. 과거 테라(LUNA)의 붕괴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스테이블코인을 유지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실제 달러나 국채를 1:1로 보유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알고리즘으로 가격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테라는 후자의 방식을 택했다가 완전히 붕괴했다.
현재 가장 신뢰받는 스테이블코인은 테더(USDT)와 서클(USDC)이다. 이들은 실제 달러나 국채를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고 있다. 하지만 구성에는 차이가 있다. 테더는 국채 비중이 높고, 서클은 현금성 자산 비중이 높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어떻게 돈을 벌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1달러를 받아서 1코인을 발행해주는데,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환전 수수료와 자산 운용 수익이다. 고객들로부터 받은 달러를 국채에 투자해서 이자 수익을 얻는다. 현재 미국 국채 금리가 4% 정도 되니까, 고객에게는 2% 정도만 주고 나머지는 회사가 가져가는 식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엄청난 수익이 된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에서 성공한 회사의 주식이나 그 끝머리라도 잡을 수 있으면 잡으라"는 조언이 나오는 것이다. 정말 '노다지 장사'인 셈이다.
미국의 전략적 관점
흥미롭게도 스테이블코인의 99%가 달러 기반이다. 이는 미국에게는 달러패권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팔고 있는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국채를 대량 구매해주니 미국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더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수록 실질적으로는 달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트럼프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달러패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이유다.
한국의 딜레마
한국은 현재 스테이블코인을 두고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화폐'로 보고 있다. 1원과 1코인이 같은 가치를 가진다면 이는 사실상 화폐이고, 따라서 중앙은행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리 정책이나 환율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이 발의한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코인'으로 본다. 화폐가 아니라 디지털 자산이니 규제를 완화해서 생태계를 빨리 만들자는 입장이다. 발행 자본금 요건도 기존 50억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가능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해가 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하지만 생태계만 잘 만들면 충분한 수요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BTS 포토카드를 NFT로 만들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만 살 수 있게 한다면? K-팝 팬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이유가 생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콘텐츠와 연계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잠재적 위험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에도 위험은 있다. 첫째, 발행사가 보유한 자산의 안전성 문제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때 서클이 큰 타격을 받았던 것처럼, 은행이 망하면 스테이블코인도 위험해진다.
둘째,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대량의 스테이블코인이 한꺼번에 달러로 환전되면 시장 자체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셋째,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충돌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에 돈이 몰리면 은행의 예금이 줄어들고, 이는 신용창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국은행이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결론: 변화의 물결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월마트,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결제 수단으로 검토하고 있고, 각국 정부도 제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무작정 반대하기보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한국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디지털 경제에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성급한 규제 완화보다는 단계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고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화폐 혁명의 시작점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기술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모두 고려한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