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코스피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단순히 주식시장의 호재를 넘어서,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요한 시도로 보인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무엇이 바뀌는가?
이번 법안의 핵심은 명확하다. 상장기업이 매입한 자사주를 1년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스톡옵션 등 임직원 보상이나 공익적 목적, 기타 경영상 사유가 있으면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예외를 둘 수 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한 후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
자사주 소각의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발행주식 총수가 줄어들면서 주당 순이익과 주당 순자산이 상승하게 된다. 이는 개인투자자에게 효과적인 주주가치 제고 방법이다. 예를 들어, 100만 주를 발행한 기업이 10만 주를 소각하면, 남은 90만 주에 대한 주당 가치가 자동으로 상승하는 원리다.
시장의 즉각적인 반응과 그 배경
법안 발의 소식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자사주 보유 비율이 높은 신한증권과 NH투자증권 등이 상한가를 기록했고, 코스피도 장중 최고점을 경신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상반기까지 자사주 소각 금액이 15조 4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도 이런 기대감을 뒷받침한다. 특히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소각 기대감이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과연 합리적일까?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실제로 시행되려면 국회 통과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에서는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며,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꼼수 대응의 그림자
흥미로운 점은 법안 발의를 앞두고 일부 기업들이 '꼼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EB, Exchangeable Bond)를 발행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교환사채는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신주 발행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채권자는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원금 대신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 올해 코스피 상장사 11곳이 자사주를 담보로 하는 EB 발행에 나섰는데, 이는 벌써 작년 건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경영진에게 영향을 줄 수 없지만, EB 투자자가 교환청구하면 의결권이 살아난다는 점이다. 더욱이 주식 전환이 이루어지면 유통주식 수가 증가해 소액주주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3767억 원 규모로, SKC가 2660억 원 규모로 EB를 발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태광산업은 자사주 24.4% 전량을 기반으로 EB 발행에 나서자 금융감독원이 정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전문가 관점에서 본 정책의 의미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분명 긍정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몇 가지 우려사항도 있다.
첫째, 기업의 자율성 침해 문제다. 자사주는 기업이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재무 도구다. 의무 소각이 도입되면 기업의 재무 전략 수립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둘째, 예외 조항의 남용 가능성이다. 법안에는 주주총회 결의를 통한 예외 조항이 있는데, 이것이 또 다른 꼼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대주주가 지배하는 주주총회에서 예외를 인정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셋째, 교환사채 등을 통한 우회 방법들이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규제가 강화되면 그것을 피해가는 새로운 방법들이 나타나는 것은 금융시장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개인투자자가 알아야 할 것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우선, 자사주 소각 기대감만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 법안이 통과될지, 언제 시행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부 기업들이 EB 발행 등으로 자사주를 우회 처분하고 있어 실제 소각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또한 EB 발행 기업에 투자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E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유통주식 수가 늘어나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특히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에게 EB를 배정하는 경우, 이들의 지배력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자사주 보유 비율이 높은 기업에 투자할 때는 해당 기업의 자사주 처분 계획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소각 기대감보다는 기업의 실제 의도와 계획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은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다. 하지만 법안 통과와 실제 시행까지는 여러 변수가 있고, 기업들의 우회 방법도 계속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은 단순한 호재성 뉴스에 휘둘리기보다는, 각 기업의 실제 자사주 정책과 재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은 분명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 개선이 한국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